마음을 울리는 글 - 詩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허남기

Issac Do 2018. 1. 27. 01:05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허남기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교사는 아직 초라하고

교실은 단 하나뿐이고

책상은

너희들이 마음놓고 기대노라면

삑하고 금시라도

찌그러질것 같은 소리를 내고

 

문창엔 유리 한장 넣지를 못해서

긴 겨울엔

사방에서

살을 베는 찬바람이

그 틈으로 새여들어

너희들의 앵두같은 두뺨을 푸르게 하고

 

그리고 비오는 날엔 비가

눈내리는 날엔 눈이

1948년 춘삼월엔

때 아닌 모진 바람이

이 창을 들쳐

너희들의 책을 적시고 뺨을 때리고

심지어는 공부까지 못하게 하려 들고

그리고 두루 살펴보면

백이 백가지 무엇 하나

눈물 자아내지 않는것이 없는

우리 학교로구나

 

허나

아이들아

너희들은

니혼노 각고오요리 이이데스 하고

서투른 조선말로

 

우리도 앞으로

일본학교보다 몇배나 더 큰 집 지을수 있잖느냐고

되려

이 눈물많은 선생을 달래고

그리고

또 오늘도 가방메고

씩씩하게 이 학교를 찾아오는구나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비록 교사는 빈약하고 작고

큼직한 미끄럼타기 그네 하나

달지 못해서

너희들 놀 곳도 없는

구차한 학교지마는

아이들아

이것이 단 하나

조국 떠나 수만리 이역에서

나서자란 너희들에게

다시 조국을 배우게 하는

단 하나의 우리 학교다

아아

우리 어린 동지들아


 이 시는 재일한인 1세 허남기 시인의 시입니다. 허남기씨는 1948년 조선학교 교장으로 재임하던 당시에 이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당시 재일한인들은 일본정부의 민족학교 차별정책에 저항하던 시기였습니다.

아울러 해방후 재일한인사회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민단과 북조선 국적을 유지했던 조련의 대립에 있었고, 허남기 시인이 설립한 가와구치 조선학교 역시 민족학교 중에서도 조련계의 학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념적 대립을 넘어서 남한과 북한은 모두 한민족이라는 차원에서, 남북한 진영의 논리에서 벗어나 단지 그 당시 재일한인들이 일본으로부터 받았던 차별과 멸시 속에서 힘들게 한민족의 민족성을 유지하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 이 시에 담겨있는 듯 해서, 재외동포와 관련된 작업을 하던 차에 마음이 동하여 공유를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