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이켜 생각해보니, 6년 전 이곳으로 들어올 당시에도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 그렇게 숨어버리듯이 정착했다.
그 수많은 사랑과 소중한 것들을 뒤로 한 채로,
그보다 더 나 자신을 파괴됨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마음으로
그렇게 도망치듯 이 곳으로 달아나 버렸다.
다시 시작 하겠노라고, 새출발 하겠노라고,
새로운 길을 나서겠노라고..
그렇게 다짐하고 살아가려 노력했다.
그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그 많은 일들이 내 시간을 스쳐지나가는 동안,
나는 이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새로움을 이야기 했지만, 사실 그것은 마치 헌 도배지 위에 새 도배를 하듯이,
그렇게 눈가리고 아웅 하는 식에 불과했다.
그렇게 덧칠하는 과정 속에서 다시금 소중한 것이 생겼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아닌듯 하며 거부했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 무언가에 내 모든 것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내 수족마저 잘라내며 맞춰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 순조로움은 이내 모든 것을 파괴시켰다.
6년 전, 파괴되지 않기 위해서 달아난 것과 달리
내 모든 것을 담아내려 했던 그릇은
이내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그렇게 내 세계는 조각조각 부셔졌다.
그 방은, 내게 도피처이자 하나의 세계였다.
나는 이내 조각난 내 세계의 파편들을 가슴에 끌어모아
부둥켜 감정의 폭발을 일으키며 시간선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더이상 그 조각들을 끌어모을수도, 이어 붙일 수도 없음을
그리고 그 부둥켜 안은 조각들로 인해 스스로가 피흘리고 있음을
더욱이 그 피흘리는 아픔에 중독되어 나 자신을 방치하고 있었음을...
허망했다. 모든 것이 공허했다.
주변의 많은 것들이 각자의 방향을 가지고서 나아갈 때에도 나는,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었다. 기억을 움켜쥔 채, 잊지 않으려 발버둥 치고 있었다.
잊지 않고, 기억에 얽매여 있다보면, 그렇게 혼자서라도 뒤돌아보고 있다면
그 많은 오래전 아름다운 것들이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그런 헛된 생각 속에서
제 갈길을 가는 가운데에서도 나는 그 자리를 고수했다.
나는 그 방에 그대로 머무르고 있었다.
들여보내지만, 내보내지는 않은 채 그렇게 6년을 끌어모았다.
당연히 방은 고물상과도 같았다.
정리되지 않은 채로 수많은 책들이 여기저기 산발했고,
쓸모없는 것들과 함께 쓸모 있는 것들마저 그 쓸모를 잃어가며 방치되고 있었다.
언젠가 잃은 책에서 이런 글귀를 보았다.
"꿈을 꾸는 자는 기꺼이 잊는 자다. 꿈을 꾼다는 것은 기억에 얽메이지 않겠다는 뜻이고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의미다"
기꺼이 잊지 않으려 노력했기에, 꿈을 꿀 수 없었다.
그 방에서 한참을 틀어박혀 꿈 꾸지 않고 그 수많은 고물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새로운 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또 한번의 지점이 필요했다.
나는 그 방을 탈출하기로 생각했다.
그 곳을 들어갈 때보다 더 어렵고 추운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방을, 그 파편화된 세계를 나와서 새로운 세계를 구축해야만 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중에 많은 이들이 들어본 적 있는 유명한 문장이 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자신의 세계인 알을 파괴함으로써 사실상 더 큰 세계로 나아간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자신의 세계관을 파괴하고 나온 새가 마주하는 새로운 세상은 이전보다 새에게 더 많은 자유를 선사할 것이다. 그 세상에서 새는 하늘을 동경할 수도 있고, 자신의 동족을 찾아 떠날수도 있고, 둥지를 틀고 가정을 이룰수도 있는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나에게 그 방은 알이었다.
나는 그 방을 파괴했다.
나는 내 세상을 어렵사리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꿈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일상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19 months ago.. (0) | 2015.02.04 |
---|---|
언젠가는 꽃이 피게 마련이니 (0) | 2015.02.04 |
카톡친구들 in 현대백화점 대구점 (0) | 2015.01.31 |
타임즈 선정 20세기 최고의 책 100선 (3) | 2015.01.31 |
처음 쓰는 글 (0) | 2015.01.27 |